개막식이 열리는 상암 DMC (디지털 미디어 시티) 한국영상자료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였다. 개막식은 오후 7시부터 시작했고, 나는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오후 6시까지는 빌딩 2층의 콘텐츠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다가, 그 이후에 다시 상영관이 있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작년 서울독립영화제 (이하 서독제) 2009도 그랬지만, 언제나 개막식은 활발하다. 이리 저리 바쁘게 움직인 스태프와 자원봉사자들, 발언 멘트를 준비 중인 사회자, 그리고 이 축제를 보러운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열기를 내뿜는다.
이런 열기에 비해 서독제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작년부로 문화관광체육부는 서독제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했다. 2008년, 2009년. 이렇게 이 년에 걸쳐 열린 독립영화만의 장소 <인디스페이스>는 영화진흥위원회의 난데없는 지원 중단, 그리고 건물 소유주의 건물 철거 결정으로 2009년의 마지막 날, 12월 31일에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나와야 했다. 2009년의 마지막 달에 만난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나의 "이제 어떡하죠?"라는 우문에 "어떻게든 해야죠. 언제는 쉬었나요."라는 현답을 주었다. 그리고 1년 후, 확실히 서독제는 슬로건에 '毒'(독하다 독) 자를 붙이면서 예전보다 독해진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독해진 서독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고 있다. 독해진다는 것은 잡다한 요소를 버리고 진액들만 모아 더욱 강렬해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독립영화는 자본이 좌지우지 하는 영화 제작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우리 주변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또는 감독 특유의 개성을 살려 전달하는데 주안점을 갖고 있다. 원래 그런 특성을 가진 독립영화였으니 '독해진' 서독제는 지금보다 더 친숙한 모습으로 다시 관객들을 볼 수 있게된 것이다.
오후 7시 정각이 되자 관객 입장이 시작되었다. 프레스 테이블 왼편에는 (아마도 이번 행사를 후원한 훼미리마트 것 같은) 삼각김밥과 백설기를 나눠주고 있었다. 백설기가 담긴 비닐봉투 겉면에는 이 떡을 작년 서독제에서 대상을 받은 <땅의 여자>에 등장하는 '언니들'이 직접 만든 쌀로 만들었다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흔히 만날 수 없는 떡인 것이다. 확실히 떡은, 다른 백설기보다 더 맛있었다.
작년 서독제의 시작을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가 뜨겁게 불살랐다면, 이번 서독제의 시작을 흥겹게 만든 것은 '김반장과 비빔풍악단'이었다. 한국에서 하는 사람을 쉽게 찾기 어려운 레게 / 소울을 하는 음악 그룹 <윈디시티>의 '김반장'이 만든 프로젝트 음악 그룹이다. '풍악단'이라는 그룹 이름에서 이미 느껴지듯이 '비빔풍악단'은 한국적인 정서를 레게와 소울로 질펀하게 풀어낸다. 마치 마당놀이에서 들려오던 리듬처럼. 축하 공연은 흡사 미니 콘서트처럼 벌어졌다. 한 곡을 마치고 김반장은 특유의 목소리로 나를 포함한 관객들에게 흥겹게 '일어나서' '놀자고' 주문하였다. 그리고 약 30분간 한국영상자료원 1관은 놀이마당이 되었다. 모두가 신나게 어깨를 덩실덩실 흔들고, 무대 위에서는 장단이 울려퍼진다. 기분은 말할 필요가 없이 좋았다. 싸이가 공중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벌였다는 놀이판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자, 모두 일어서서 즐겨볼까요?"

그래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흥겹게 놀았죠. 특히 권해효 씨가 매우 신나했어요.
아쉽게도 시간은 매우 빠르게 흘러 어느덧 공연은 막을 내렸고, 본행사가 진행되었다. 10년째 서독제의 진행을 맡고 있는 배우 권해효 씨, 7년째 진행을 맡고 있는 방송인 류시현 씨가 매년 그랬듯이 오늘도 서독제의 개막식 진행을 맡았다. 자기가 조영각 집행위원장보다 오래 서독제에 있었다고 권해효 씨가 눙을 치면서 (조영각 집행위원장은 9년 째 서독제 사무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좌중은 더욱 흥겨워졌다. 임창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과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의 축사가 끝나고, 경쟁 부문에 진출한 감독들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뭐, 굳이 이 상황을 글로 옮길 필요는 없을 것 같고.
그리고 이 행사의 마지막 피날레를 장식하기 위해 몇 년 째 서독제에서 장기 집권 (…) 중에 있는 조영각 집행위원장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작년 서독제에서 개봉한 <원 나잇 스탠드>처럼 지금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의 부지영 감독이 주축이 되어 김꽃비 등의 인디 영화 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촬영한다'는 컨셉으로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 한다. 내년 서독제에서 본편을 선보일 예정이며, KT&G상상마당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네. 그리고 정말 이 본행사의 마지막인 개막작 <도약선생>의 감독 / 배우 소개. <은하해방전선>으로 충격적인 데뷔를 했던 윤성호 감독과 주연배우 박혁권, 박희본, 나수윤 씨가 무대 앞으로 나왔다. 대회 홍보용으로 제작된 영화지만 마음대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했다고 밝힌 감독, 연기를 해서 좋았다는 배우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윤성호 감독의 말마따나, <도약선생>은 어떤 의미에서 <은하해방전선>보다 더 충격적인 중편 영화였다.
한 시간 여의 개막작 상영이 끝나고 대다수의 관객들은 집으로,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뒷풀이 장소로 발을 옮겼다. 작년에는 (그리고 내가 못간 재작년에는) 중앙시네마 근처 명동의 시네마 호프에서 뒷풀이를 가졌었는데, 올해는 호프집 / 순대국집 두 군데로 나눠서 진행되었다. 소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순대국집으로,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은 호프집으로. 난 당연히 호프집으로 갔다. 서로 모르는 사람과 안주를 먹으며 술을 마시고 나니 어느 덧 내 몸은 교지 편집실에 와있었다. 독하게 취해서 어떻게 들어갔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누군가가 택시를 태워줬으리라. 친절하기도 하시지. 택시에 데려다 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 분처럼, 서독제 2010은 독해졌지만 한결 부드러운 인상으로 다가왔다. 임창재 이사장의 "다음 번 행사는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치뤄졌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그 부드러운 분위기, 다시 우리들의 장소에서 열릴 날은 언제가 되려나. 가급적이면,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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